
독립이라는 평생의 신념
조정래의 <안중근>을 읽고
하나. 조정래의 <안중근> 정보
도서명 안중근 (큰작가 조정래의 인물 이야기 2)
저자 조정래 글 / 이택구 그림
출판사 문학동네
발행일 2007년 10월 25일 (초판 1쇄)
둘. 조정래의 <안중근> 줄거리
황해도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몸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았다'는 의미로 **응칠(應七)**이라 불렸다.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학문을 닦는 동시에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한 호연지기를 갖춘 청년으로 성장한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그는 교육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 믿고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운영하며 인재 양성에 힘쓴다. 하지만 일본의 탄압이 심해지자 더 적극적인 투쟁을 위해 연해주로 망명을 떠난다.
연해주에서 의병 부대인 대한의군을 조직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펼친다.12명의 동지와 함께 네 번째 손가락 마디를 자르는 '단지동맹'을 맺으며 이토 히로부미 처단과 독립을 맹세한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등과 함께 거사를 준비한다. 1909.10.26 하얼빈역 기차에서 내리는 이토를 향해 세 발의 총탄을 명중시킨 후 체포된다.
일본 법정의 불법적인 재판 과정에서도 안중근은 당당하게 이토의 죄상을 꾸짖으며 자신을 전쟁 포로로 대우할 것을 요구한다. 사형 선고를 받은 후 감옥에서 자신의 사상을 담은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다가, 1910년 3월 26일 순군한다.
셋. 핵심 쟁점 :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잡혀온 안중근은 자신이 이토를 죽인 이유를 사사로운 개인 감정이 아닌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수행한 전쟁 중의 작전이라고 천명한다.
1.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요.
2. 고종 황제를 폐위시킨 죄요.
3.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요.
4.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요.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6. 철도·광산·산림·강산을 마음대로 빼앗은 죄요.
7. 제일은행권 지폐를 발행해 마음대로 사용한 죄요.
8. 군대를 해산시킨 죄요.
9. 교육을 방해하고 신문 읽는 걸 금지시킨 죄요.
10.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요.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버린 죄요.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을 퍼뜨린 죄요.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 쉬지 앟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부사한 것처럼 천황을 속인 죄요.
14. 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요.
15. 일본 현 천황의 아버지 고메이를 죽인 죄요.
넷. <안중근> 디베이트 논제
<논제 1> 안중근이 사로잡은 포로들을 풀어준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 비판 측: 적군을 풀어줌으로써 아군 위치가 노출되어 부대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므로 군사적으로 실책이다
- 옹호 측: '만국공법'을 지키는 인도주의적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테러 집단이 아닌 정규군으로서의 도덕적 우위를 점했다.
<논제 2> 안중근이 이석산을 겁박하여 거사의 자금을 확보한 것은 정당성에 위배된다.
- 비판 측: 아무리 대의가 좋아도 개인의 재산을 위협하여 빼앗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 옹호 측: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친일적 성향을 보이며 부를 축적한 자의 자금을 독립운동에 사용하는 것은 '긴급 피난'적 성격의 구국 행위다.
다섯. 조정래 <안중근> 질문 나누기
1. 15쪽) 안중근의 어릴 적 이름(아명)이 '안응칠'이 품은 뜻은?
배와 가슴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2. 27쪽) 안인수가 손자 응칠이를 공부시키기 전에 따로 준비한 것은 무엇인가?
손자의 공부를 서두르지 않은 이유는?
아이는 먼저 몸이 건강하고 기운이 씩씩해야 하며, 억지로 시키는 공부보다 스스로 깨닫고 배우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3. 38쪽) 안중근 일가가 황해도 청계동으로 이사한 이유는?
당시 부패한 관리들의 탐학이 심해지고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가족들을 보호하고 안전한 곳에서 자식들을 교육하며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산세가 험하고 요새 같은 청계동으로 이주했다
4. 42쪽) 아명에서 이름을 '안중근'으로 바꾼 이유는?
어릴 때의 가벼운 성격(응칠)을 다스리고, 무겁고 진중하게 뿌리 내리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무거울 중(重)', '뿌리 근(根)' 자를 써서 이름을 바꾸었다.
5. 45쪽) 글공부보다 사냥에 빠져있는 중근에게 아버지가 더이상 공부 얘기를 꺼내지 않은 이유는?
중근의 기질이 이미 무(武)에 가깝고 호연지기가 넘친다는 것을 파악했다. "문무를 겸비하면 좋으나,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단하여 중근의 성향을 존중한 것이다.
6. 53쪽) 안태훈 진사가 토벌대상인 동학군의 우두머리인 김구를 반갑게 맞아들인 이유는?
비록 적군인 동학군의 우두머리였으나, 김구의 비범한 기개와 애국심을 보았기 때문이다. 적일지라도 훌륭한 인재를 아끼는 안태훈 진사의 도량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7. 69쪽) 안중근이 독립을 위해 대학을 세우고 선생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나라를 되찾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 하며, 그 바탕은 민족의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8. 70쪽) 안중근의 대학 설립 제안을 민주교가 거절한 이유는?
그리고 안중근이 깨달은 것은?
민주교는 백성들이 똑똑해지는 것을 우려했다. 백성들의 지식이 많아지면 그만큼 천주교의 교세 확장 및 신앙에 대한 의문과 비판 의식도 성장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에 안중근의 외세의 도움을 받아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깨닫고 당장 눈앞의 적에 맞서 싸우는 직접적인 행동(무력 투쟁과 외교)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9. 89쪽)안중근이 애국계몽운동과 무장투쟁에 주력한 이유는?
일제의 침략이 교육만으로는 막을 수 없을 만큼 노골화되었기 때문이다. 백성을 깨우치는 동시에 총칼을 들고 직접 맞서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10. 100쪽) 안중근이 교육사업을 접고 북간도,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한 이유는?
국내에서의 활동은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더 자유롭게 군사를 기르고 독립운동 기지를 마련하기 위해 해외 망명을 선택한 것이다.
11. 151쪽)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음에도 안중근이 처음에 감옥에서 대우를 받은 이유는?
안중근 의사의 태도가 매우 당당하고 논리적이었으며, 일본인 간수들조차 그의 인격과 고결한 성품, 그리고 학식에 감복했기 때문이다.
12. 163쪽) 안중근의 어멈니가 항소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음을 맞으라고 한 이유는?
"네가 항소를 하는 것은 일제에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한 일이니 딴 마음 먹지 말고 떳떳하게 죽으라"는 엄격한 어머니의 결단이었다. 항소로 인해 안중근의 죽음이 더렵혀지겨나 독립운동이 빛이 발하지 않길 바라는 독립투사의 어머니의 간곡한 마음이었다.
'질문으로 읽는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지 오웰의 <1984> (3부) _ 파괴와 개조(빅브라더를 사랑했다) (0) | 2026.02.25 |
|---|---|
| 조지 오웰의 <1984> (2부) 사랑과 저항(금기를 깨다) (0) | 2026.02.24 |
|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_희생과 구원으로 완성된 숭고미 (0) | 2026.02.11 |
| 김유정의 <봄봄>-웃픈 나의 혼인 분투기 (0) | 2026.02.10 |
|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_파면 팔수록 깊은 수렁속으로 (0) | 2026.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