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류를 읽지 못한 권력, 그 치욕의 대가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고
하나. 김훈의 <남한산성> 정보
| 구분 | 초판 (2007) | 개정판 (2017) |
| 저자 | 김훈 | 김훈 (그림: 문봉선) |
| 출판사 | 학고재 | 학고재 |
| 발행일 | 2007년 4월 10일 | 2017년 7월 5일 |
| 분량 | 383쪽 | 448쪽 |
| ISBN | 9788956250595 | 9788956253534 |
| 특징 | 김훈의 다섯 번째 장편 | 출간 10주년 및 100쇄 기념 개정판 |
둘. 김훈의 <남한산성> 줄거리
겨울 추위가 기성을 부리던 날, 청나라 기병의 급습을 피한 인조와 신하들은 강화도로 가려던 길을 돌려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성 안에는 1만 3천 명의 군사와 백성들이 모여들지만, 먹을 것은 부족하고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든다. 성 안에서는 청나라에 항복하여 목숨을 보존하자는 주화파(최명길)와 죽더라도 대의명분을 지켜 싸워야 한다는 척화파(김상헌)가 격렬하게 대립한다.
말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성 안의 현실은 처참해진다. 군병들은 가마니조차 뺏겨 추위에 얼어 죽고, 굶주린 군마들은 서로의 꼬리를 뜯어먹다 죽어간다. 외부에서 오기로 한 구원군마저 청군에 격파당하며 성은 완벽하게 고립된다.
청나라의 황제 홍타이지(칸)가 직접 산성 아래 도착하여 압박을 가한다. 거대한 대포 소리가 성벽을 뒤흔들자, 결국 인조는 최명길이 쓴 항복 문서를 받아들인다. 김상헌은 절망하며 자결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인조는 남행궁을 나와 서문으로 향한다.
인조는 삼전도에 설치된 수항단에서 칸을 향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는다. 전쟁은 끝났으나 수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고, 살아남은 자들은 다시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 비극적인 뒷모습을 비추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셋. 김훈의 <남한산성> 핵심쟁점
최명길(주화파) VS 김상헌(척화파)의 날선 대립
1. 최명길 (주화파: 이조판서) : "삶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명분도 있다."
청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항복함으로써 나라의 씨가 마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분은 소중하지만, 백성이 다 죽고 성이 함락되면 그 명분을 지킬 주체조차 사라진다고 여긴다.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임을 강조한다.
최명길의 태도는 대륙의 떠오르는 태양인 청나라를 현실적이게 바라보며 위기에 빠져있는 조선 조정을 냉철히 판단한다. 비난받을 것을 알면서도 직접 항복 문서를 초안하며 '살 길'을 찾는다. '말(言)'보다는 '길(路)'을 중시한다. 임금이 나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을 닦으려 한다.
2. 김상헌 (척화파: 예조판서) : "죽음은 가볍고 치욕은 무겁다."
오랑캐인 청나라에게 무릎을 꿇느니 끝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죽는 것이 사대부의 도리다. 명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리고 짐승 같은 오랑캐에게 항복하는 것은 살아도 죽은 것과 다름없다. 당장의 생존보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대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며 매우 이상주의적이고 강직하다. 예판으로서 예법과 도덕적 결벽을 끝까지 고수하며, 항복 문서가 완성되자 이를 찢으며 통곡한다. '길(路)'보다는 '말(言)'의 순결함을 중시한다. 인간의 도리를 증명하는 높은 차원의 말을 내세운다.
넷. 김훈의 <남한산성> 질문나누기
1. 청나라가 다시 조선을 침략한 이유 (병자호란의 배경)
정묘호란(1627년) 이후 조선과 청나라가 '형제의 나라' 관계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조와 집권 세력인 서인들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중시하며 청나라를 배척하는 척화(斥和) 정책을 계속 고수한다. 청나라 사신을 박대하거나 국서를 접수하지 않는 등의 행위가 청을 자극한다.
당시 청나라는 중원(명나라)을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 대규모 전쟁을 준비 중이었다. 이때 명나라와 밀착된 조선을 그대로 두면, 청군이 명나라로 진격했을 때 조선군이 등 뒤를 공격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다. 즉, 배후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조선을 확실히 굴복시켜야 했다.
또한 세력을 키운 청나라는 조선에 기존의 '형제 관계'를 폐지하고, 자신들을 상전으로 모시는 '군신(君臣) 관계'를 요구한다. 조선 조정은 이를 '오랑캐에게 무릎 꿇는 치욕'으로 간주하여 강하게 거부한다.
이는 청황제인 칸(홍타이지)이 친정(親征)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내가 이미 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땅 위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나를 황제로 여김은 천도에 속하는 일이지, 너에게 속하는 일이 아니다. 또 내가 칙으로 명하고 조로 가르치고 스스로 짐을 칭함은 내게 속하는 일지지, 너에게 속하는 일이 아니다.
네가 명을 황제라 칭하면서 너의 신하와 백성들이 나를 황제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까닭을 말하라. 또 너희가 나를 도적이며 오랑캐라고 부른다는데, 네가 한 고을의 임금으로서 비단옷을 걸치고 기와지붕 밑에서 앉아서 도적을 잡지 않는 까닭을 듣고자 한다...
2. 다시 처들어서는 청병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란을 가는 임금의 행렬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 "며 신하들의 맹렬히 뒤엉킨 말과 달리 인조는 처연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왕은 본래 길을 제시하고 결정을 내리는 존재다. 그러나 피란길의 인조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국가의 주인인 임금이 자기 땅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처럼 변해버린 '낯섦'과 '무력함'을 의미한다. 신하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수동적인 처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적군의 위치도, 성 안의 버팀 한계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조의 질문에는 확신이 없다. 신료들이 말과 말이 부딪히며 치열한 말의 전쟁을 펼치지만, 정작 결정을 내려야 하는 왕은 "더듬거림"에 불과하다. 대의명분 뒤에 숨어 나약하고 초라한 허상 뿐인 수장일 뿐이다.
..문장으로 발신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며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말들의 산맥 너머는 겨울이었는데, 임금의 시야는 그 겨울 들판에 닿을 수 없었다.
"임금이 물었다.. 길을 묻는 과객의 어조였다." "임금의 말투는 장님이 벽을 더듬는 듯했다."
3. 늙은 사공이 강가를 떠나지 않은 이유
인조 일행을 배에 태워 강을 건네준 늙은 사공은 청병이 들이닥친다는 소식에도 강가를 떠나지 않는다. 사공은 제 나라 임금이 무사히 강을 건너게 도와주었으나 곡식 한 푼 얻어먹지 못했단 사실에 실망감 및 노여움까지 가진다. 나중에 청병이 오더라도 그들을 건네주고 곡식이라도 얻어먹으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영악한 희망을 품는다.
성안으로 함께 가자는 김상헌의 거듭된 제안에도 사공에게 강각는 평생을 살아온 터전이자 유일한 생계 수단이기 때문에 섣불리 떠날 수 가 없다. 결국 김상헌은 사공이 장차 청병의 길잡이가 되어 임금의 뒤를 쫓게 할까 우려하여, 백성의 생존 본능을 '대의'의 이름으로 단칼에 베어버린다. (공교롭게도 김상헌은 사공의 어린 딸을 거두고 보살피게 되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4. 가마니(멍석)의 용도: 군병인가, 군용말인가
이 대목은 성 안의 자원이 바닥난 상황에서 '인간의 생존'과 '전쟁의 수단' 사이의 처참한 갈등을 보여준다.
군병의 입장에서 가마니는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 얼어 죽어가는 병사들에게 멍석을 깔아주거나 이불 대신 덮어서 체온을 유지시킬 수 있는 추위를 피하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하지만 말은 전쟁의 핵심 전력이다. 말이 굶어 죽으면 기동력을 잃고 성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게 된다. 가마니를 말먹이 풀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결국 조정은 굶주린 말을 살리기 위해 병사들의 가마니를 거두어 말 먹이로 주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정작 말들은 가마니를 씹지도 못한 채 죽어가고, 가마니를 뺏긴 병사들 또한 추위에 동사하는 허무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5. 칸(홍타이지)이 직접 조선으로 내려온 이유
청나라 황제 칸이 친정(親征)을 감행한 데에는 고도의 정치적·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조선이 강화도로 피신하여 장기전을 펼치는 것을 차단하고, 황제가 직접 나타남으로써 단숨에 항복을 받아내려 한다. 청은 명나라와의 전면전을 앞두고 있었다. 배후에 있는 조선을 확실히 굴복시켜 후환을 없애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새로 선포한 '청'이라는 국호와 황제의 권위를 조선으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중원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정통성을 세우고자 한다.
6. 신하들이 칸의 국서에 답서를 거절한 이유
청나라의 국서에 답장을 쓰는 문제는 조정 내에서 극심한 갈등을 일으킨다. 신하들이 이를 거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칸이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조선 왕을 '신하'로 부르는 국서에 답을 하는 것은 곧 명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로 간주된다. 답서에는 필연적으로 굴욕적인 항복의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 대의명분을 목숨만큼 중요시하 유교적 가치관을 지닌 사대부들에게 이는 죽음보다 더한 수치였다.
또한 답서의 문장을 짓는다는 것은 항복의 주동자가 된다는 뜻이다. 훗날 역사의 죄인이나 비겁자로 낙인찍힐 것을 두려워하여 서로 붓 잡기를 기피한다. 결국 주화파인 최명길이 답서를 작성하게 된다.
최명길의 답서 중
황제께서 끝내 노여움을 거두지 아니하시고 군사의 힘으로 다스리신다면 소방은 말길이 끊어지고 기력이 다하여 스스로 갇혀서 죽을 수 밖에 없으니, 천명을 이미 받들어 운영하시는 황제께서 시체로 가득 찬 이 작은 성을 취하신들 그것을 어찌 패왕의 사업이라 하겠나이까.
황제의 깃발 아래 만물이 소생하고 스스로 자라서 아름다워 지는 것일진대, 황제의 품에 들고자 하는 소방이 황제의 깃발을 가까이 바라보면서 이 돌담 안에서 말라 죽는다면 그 또한 황제의 근심이 아니겠나이까. 하늘과 사람이 함께 귀의하는 곳에 소방 또한 의지하려 하오니 길을 열어주시업소서...
7. 칸(홍타이지)이 조선의 답서를 '사특하다'며 격노한 이유
청나라 황제 칸은 조선이 보낸 답서를 읽고 크게 화를 내며 이를 '사특(간사하고 악함)하다'고 규정한다. 그 이유는 조선의 '이중적인 태도' 때문이다. 조선의 답서는 겉으로는 머리를 숙이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청나라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는 교묘한 문구들로 가득했다. 칸은 조선이 '말 뒤에 숨어 시간을 벌려 한다'고 판단했다.
조선은 여전히 명나라를 상국으로 받드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으며, 청의 요구(군신 관계)를 수용하는 척하면서도 실질적인 확답을 피했다. 칸은 이제 막 '황제'가 된 자신에게 조선이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고, 문장 속에서 잔꾀를 부리는 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8. 인조가 항복을 결심한 이유
성 안에서 버티던 인조가 결국 성문을 열고 나가기로 한 결정적 계기는 '더 이상 퇴로가 없는 절망적 상황' 때문이다. 믿었던 팔도의 구원군들이 청군에게 격파당하거나 성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성 안의 식량이 바닥나고, 병사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더 이상 싸울 기력이 없었다. 말들이 서로의 꼬리를 뜯어먹고 군병들이 동사하는 참상이 극에 달했다.
청군이 성벽을 향해 쏜 현대식 대포(홍이포)의 위력에 성벽이 무너지고 성내가 공포에 휩싸였다. 무력의 압도적 차이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최명길의 주장처럼, 지금 항복하지 않으면 왕실의 대가 끊기고 나라 자체가 지도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가 작용했다.
9. 조선의 항복의 대가 (삼전도의 굴욕과 그 이후)
항복은 단순히 전쟁의 종료가 아니라,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대가를 치르는 과정이었다. 인조는 남한산성 서문을 통해 걸어 나와, 삼전도에 설치된 수항단에서 칸을 향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부딪히는 치욕적인 의식을 치렀다.(삼배구고두례) 조선은 명나라와의 국교를 끊고, 청나라를 상국으로 모시는 '신하의 나라'가 되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 왕자들과 전쟁을 주장했던 신하들(삼학사)이 인질로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갔다. 약 50만 명에 달하는 조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 노예 시장에서 팔리거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훗날 돌아온 여성들은 '환향녀'라 불리며 사회적 멸시를 받는 또 다른 비극을 겪었다. 매년 엄청난 양의 황금, 백은, 쌀, 비단 등을 청나라에 조공으로 바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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