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이순신과 영웅 이순신 사이의 고뇌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고
하나. 이순신의 <난중일기> 정보
도서명 : 난중일기 (이순신과 함께한 임진왜란 7년의 이야기)
저자 : 이순신 (원작) / 이명애 (글)
그림 : 박혜선
출판사 : 파란자전거
발행일 : 2004년 9월 20일
둘. 이순신의 <난중일기> 질문 나누기
[1부: 역사 속 난중일기와 임진왜란]
1. 13쪽) 난중일기의 뜻은?
'난리(전쟁) 중에 쓴 일기'라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5월부터 전사하기 직전인 1598년 11월까지 7년 동안 진중(전쟁터)에서 직접 기록한 일기이다. 전장에서의 장수의 모습과 떨어져 지내는 가족에 대한 애끓는 모습 등 인간 이순신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2. 21쪽)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일본 전국 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부 세력(지방 영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고, 자신의 정복 야욕을 채우기 위해 조선을 거쳐 명나라(중국)까지 정복하겠다는 명분('정명향도': 명나라를 치러 갈 길을 빌려달라)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 정복에 실패하더라도 조선을 차지할 수 있다는 대안을 가지고 조선을 침략했다.
3. 36쪽) 임진왜란 뒤 조선, 중국, 일본의 변화는?
조선 : 국토가 황폐해져서 농사를 지을 농토가 1/3밖에 남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해 인구가 급감하여 노동력이 많이 상실되었다. 혼란해진 사회로 인해 신분제가 흔들리고 문화재가 대거 소실되었고 약탈되었다.
중국(명나라): 조선에 대규모 군대를 파병하면서 국력이 크게 약해졌고, 이 틈을 타 북쪽의 여진족(훗날 청나라)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정권이 무너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새로 열었다. 또한 조선에서 납치해 간 도공과 학자들을 통해 도자기 문화와 성리학이 크게 발전했다.
4. 48쪽) 이순신이 벼슬한 지 10여 년이 지나도록 출세하지 못한 이유는?
이순신은 성품이 곧고 청렴하여 윗사람의 부당한 명령이나 청탁을 단호히 거절했다. 이로 인해 권력자들의 눈 밖에 나거나 모함을 받아 파직과 승진 누락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5. 52쪽) 전쟁 중 선조가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 이유는?
한양이 함락되고 왕실이 피난을 가야 하는 국가 비상사태 속에서, 만약의 사태(왕의 유고 등)에 대비해 조정과 왕실을 안정시키고 백성들과 군사를 독려할 수 있는 중심점(분조: 조정을 둘로 나눔)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6. 54쪽) 임진왜란 중 조선의 첫 번째 승리를 가져온 해전은?
옥포 해전 (1592년 5월 7일, 거제도 옥포 앞바다에서 왜선 26척을 격파하며 조선군의 첫 승리를 기록함)
7. 61쪽) 1597년 이순신이 관직을 빼앗기고 한양으로 잡혀간 이유는? 백의종군이란?
왜군의 반간계(모략)와 이순신을 시기한 조정 세력의 모함, 그리고 "가짜 정보에 속아 바다로 나가지 말라"며 군사의 목숨을 아낀 이순신의 신중한 태도를 선조가 '임금의 명령을 거역한 죄(항명)'로 여겼기 때문이다.백의종군이란 관직과 계급을 모두 박탈당하고 평민의 옷(흰옷)을 입은 채, 군대에 아무런 권한 없이 군무에 복)하여 죄를 씻는 처벌을 말한다.
8. 63쪽) 이순신이 13척의 배를 가지고 울돌목(명량 해협)에서 적과 맞설거라고 결심한 이유는?
비록 배는 13척뿐이지만, 울돌목의 좁은 목과 알아보기 힘든 빠른 조류(물살)라는 자연적 지형을 이용한다면 수백 척의 왜군을 상대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마저 내어주면 서해를 통해 왜군이 한양까지 바로 진격할 것이라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9. 66쪽)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죽은 후 조선에서 군사를 철수시키라는 유언을 한다. 왜군은 명나라와 협상하며 후퇴할 날짜와 방법을 논의중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전쟁을 그대로 끝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7년 동안 조선의 국토를 짓밟고 수많은 백성을 잔인하게 죽인 왜군을 아무런 대가 없이 온전히 돌려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군을 확실하게 벌하고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어야만 나중에 다시는 조선을 침략할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미래를 내다본 결단이었다.
[2부: 난중일기 속에서]
9. 82쪽) 나쁜 꿈을 꾼듯 했는데 도리어 길한 꿈이었다고 생각한 이유는?
꿈속의 불길한 징조나 험난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이를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이고 철저히 대비하여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는 긍정적인 계기(길한 결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0. 107쪽) 이순신이 글자로 점을 치는 이유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전쟁의 책임감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전투의 성패나 고향에 계신 늙으신 어머니와 가족들의 안위가 너무나 걱정되고 답답하여 마음의 위안을 얻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조금이나마 대비하고자 했던 절박한 마음 때문이다.
11. 112쪽) 전쟁 중 아픈 가족들을 돌보지 못한 이순신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한 나라의 군대를 이끄는 책임자로서 사사로운 감정이나 가족을 돌보기 위해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장군의 무거운 책임감과, 마음속으로는 가족 걱정에 피가 마르고 미안함으로 가득 찼을 인간적인 고뇌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12. 144쪽) 어머니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백의종군 길을 떠나야 하는 이순신의 심정은?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제대로 배웅하지 못했다는 엄청난 불효의 슬픔과 죄책감, 그리고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죄인의 신분으로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비장함과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섞인 심정이다. 일기에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 "해가 캄캄해 보인다"고 극심한 고통을 표현했다
13. 157쪽)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의 의미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명량 해전을 앞두고 군사들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한 말로, 전쟁터에서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거나 비겁하게 굴면 결국 모두 전멸하지만, 나라와 동료를 위해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맞서 싸우면 도리어 살 길(승리)이 열린다는 결연한 각오와 군인 정신을 의미한다.
14. 163쪽) 아들 면의 죽음 소식을 들은 이순신이 “내가 지은 죄가 너를 죽인 것이냐?”라며 통곡한 이유
셋째 아들 이면은 고향 집을 습격한 왜군과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했다. 이순신은 자신이 왜군을 섬멸하는 장수였기 때문에 보복으로 아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닌지, 혹은 자신이 나라를 구하느라 아비로서 고향의 가족들을 지키지 못해 아들이 대신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닌지 자책하며 무너져 내리는 아비의 슬픈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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