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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으로 읽는 한국사

박은봉의 <한국사 편지1-1> 원시사회부터 통일신라와 발해까지(1~101p)

by 고전윤쌤 2026.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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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봉의 <한국사 편지1> 정보

 

 

  • 서명: 한국사 편지 1 : 원시사회부터 통일 신라와 발해까지
  • 저자: 박은봉
  • 출판사: 책과함께어린이
  • 초판 발행일: 2009년 2월 23일
  • 쪽수: 약 216쪽
  • 내용 소개: 한국사의 기원부터 통일 신라와 발해 시대까지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편지 형식으로 서술한 교양 역사서
  • 그림 / 구성: 박은봉 글, 류동필 외 그림

 

 

박은봉의 <한국사 편지1-1> 원시사회부터 통일신라와 발해까지(~101쪽)

 

<한국사 편지 1> 질문별 핵심 답변

 

1. (10쪽) 왜 자연은 살아있는 책이라고 했을까?

 인류의 역사는 문자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문자가 없던 선사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길 수 없었지만, 그들이 살았던 흔적은 고스란히 자연의 품에 남겨졌다. 땅속에 묻힌 뗀석기나 간석기 같은 유물,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 그리고 당시 살았던 생물의 화석 등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역사서와 같다. 우리는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유적과 유물을 찾아내고,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수만 년 전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었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읽어낼 수 있다. 즉, 자연은 종이에 기록되지 않은 인류의 첫 페이지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살아있는 역사 책'인 것이다.

 

 

2. (20쪽) 도구로 시대를 구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역사학에서 시대를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로 나누는 것은 단순히 재료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구의 재료와 제작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활 양식과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 시대에는 채집과 사냥에 의존하며 이동 생활을 했지만, 돌을 갈아 정교하게 만든 간석기를 사용한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다. 또한, 금속 도구인 청동기와 철기의 등장은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였고, 이는 계급의 발생과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도구를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인류 문명이 발전해 온 단계를 가장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타당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3. (27쪽) 왜 마을은 대개 강이나 바닷가, 섬 같은 물가에 자리를 잡았을까?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 유적지를 살펴보면 대부분 큰 강가나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물'을 얻기 위해서다. 마실 물뿐만 아니라 농경을 시작하면서 농업용수의 확보가 중요해졌다. 둘째, 풍부한 식량 자원 때문이다. 농사가 아직 초기 단계였던 시절에는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를 채취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식량 보급원 중 하나였다. 셋째, 교통의 편의성 때문이다. 울창한 숲이나 험한 산을 넘는 것보다 강줄기를 따라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물자 운반과 정보 교류에 훨씬 유리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물가는 문명이 싹트는 요람이 되었다.

 

 

4. (30쪽) 울산 반구대 바위 그림에는 왜 거북, 사슴, 멧돼지, 고래 등을 그렸을까?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 시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종교적 기록'이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의 힘에 의존하며 살았기에, 사냥감이 번성하고 사냥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매우 컸다. 바위에 고래나 사슴, 멧돼지 같은 동물을 정교하게 새긴 것은 단순히 예술 활동이 아니라, 그림 속 동물이 실제 사냥에서 잡히기를 기원하는 주술적 행위였다. 또한, 새끼를 밴 동물의 모습을 그려 넣어 종족의 번성과 풍요를 빌기도 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새해에 복을 빌거나 소원을 비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절실한 기도가 예술의 형태로 승화된 것이다.

 

 

5. (31쪽) 움집이 왜 천연 냉난방 시설일까?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움집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과학적인 건축물이다. 움집은 땅을 0.5m~1m 정도 깊게 파고 그 위에 지붕을 얹은 구조다. 땅속은 기온 변화가 적은 지열의 영향을 받는다. 덕분에 여름에는 지상의 뜨거운 열기를 차단하여 시원하고, 겨울에는 땅의 온기를 유지하여 외부의 찬 바람을 막아주는 보온 효과가 뛰어났다. 또한 지붕에 두껍게 덮은 짚이나 갈대는 오늘날의 단열재와 같은 역할을 하여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었다. 비록 겉모습은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움집은 자연의 원리를 이용해 혹독한 기후를 이겨낸 훌륭한 '친환경 에너지 절약 주택'이었다.

 

 

6. (37쪽 / 43쪽) 왜 사람 사이의 관계에 불평등이 생겼으며, 왜 전쟁을 벌였을까?

 평등했던 사회가 무너지고 계급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생산력의 발전'과 '사유 재산'의 등장에 있다.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 농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가족이 먹고도 남는 '잉여 생산물'이 생겨났다. 이 남은 식량을 누가 더 많이 소유하느냐에 따라 부의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고, 재산이 많은 사람이 힘을 가지게 되면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계급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불평등은 집단 간의 갈등으로 확장되었다.

 

 더 많은 사유 재산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 그리고 부족을 더 부강하게 만들려는 목적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농사지을 땅과 물이 풍부한 지역을 빼앗기 위해, 혹은 청동과 같은 귀한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부족들은 무기를 들었다. 전쟁에서 이긴 부족은 진 부족의 사람들을 노비로 삼아 노동력을 착취하며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했다. 결국 인류의 불평등과 전쟁은 더 나은 물질적 풍요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 낳은 역사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7. (47쪽) 왜 세계 여러 나라와 민족은 시조에 대한 신비한 전설을 갖고 있을까?

 

 단군 신화, 주몽 신화, 박혁거세 신화처럼 나라를 세운 조상에 대한 이야기는 대개 신비롭고 비현실적이다. 알에서 태어나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등 범상치 않은 탄생 과정을 그리는 이유는 국가의 권위와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를 세운 분은 하늘의 자손이다"라는 믿음은 백성들로 하여금 국왕의 통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들고,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심어준다. 이러한 신화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성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강력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즉, 건국 신화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정치적 서사'인 것이다.

 

 

8. (65쪽) 노비 주인은 왜 죽을 때 부리던 노비를 함께 묻게 했을까? (순장)

고대 사회의 가혹한 풍습인 '순장'은 당시 사람들의 사후 세계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저승에서도 이승에서의 삶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믿는 '계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왕이나 귀족 같은 지배층이 죽으면 그들이 저승에서도 부귀영화와 권위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생전에 사용하던 장신구와 그릇은 물론, 시중을 들던 노비나 부하들을 강제로 함께 매장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생명권보다 지배층의 권위와 종교적 믿음이 우선시되었던 고대 계급 사회의 비극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9. (76쪽) 왜 부여는 관리 이름을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고 했을까?

 

 부여의 관직명은 당시 사회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마(말), 우(소), 저(돼지), 구(개)는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축들이었다. 이처럼 가축의 이름을 따서 중앙의 관리 명칭을 정한 것은 부여가 농경뿐만 아니라 목축을 매우 중시하던 국가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사출도'라고 불리는 지방 통치 구조와 연결된다. 각 가축의 명칭을 가진 관리들이 왕과 별도로 자신의 구역을 다스렸다는 사실은, 왕권이 절대적이지 않고 여러 부족 세력이 연합하여 국가를 이끌었던 초기 국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0. (82쪽) 제천행사는 왜 지냈을까?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같은 제천행사는 고대 국가의 가장 큰 국가적 행사였다. 첫 번째 목적은 종교적인 감사와 기원이다.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는 이들에게 날씨는 생사와 직결된 문제였으므로, 수확을 마친 뒤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감사를 표하고 내년의 풍요를 빌었다. 두 번째 목적은 정치적 단결이다.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 며칠 밤낮을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는 과정을 통해 구성원들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왕의 권위를 확인했다. 제천행사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종교, 예술, 정치가 하나로 어우러진 종합 축제였다.

 

 

11. (92쪽) 왜 소서노가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여성일까?

 

 

 소서노는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주도적이고 강인한 여성 지도자였다. 그녀는 졸본 지역의 강력한 경제력과 세력을 가진 가문의 딸로서, 망명객이었던 주몽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고구려를 건국하는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주몽의 친아들인 유리가 찾아와 태자가 되자, 소서노는 권력 다툼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을 이끌고 과감히 남쪽으로 내려왔다. 한강 유역에 자리를 잡고 백제를 건국하는 과정에서도 그녀의 자금력과 정치적 영향력은 결정적이었다. 한 인물이 두 개의 고대 국가 탄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소서노가 한국사에서 얼마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12. (99쪽) 가야의 문화 수준은 왜 신라보다 훨씬 높았을까요?

가야가 연맹 왕국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높은 문화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과 '해상 무역'에 있다. 낙동강 하류 지역에 위치한 가야는 질 좋은 철광석이 풍부했고, 이를 제련하는 기술 또한 동북아시아 최고 수준이었다. 가야는 이 철을 화폐처럼 사용하여 중국, 왜(일본)와 활발하게 교류했다. 바닷길을 통해 선진 문물을 누구보다 빨리 받아들였고, 이를 바탕으로 정교한 철제 갑옷, 세련된 토기 문화를 꽃피웠다. 초기 신라가 가야의 철기 문화를 부러워하며 수입했을 정도로 가야는 당시 동북아시아의 '철기 문명 중심지' 역할을 했다.

 

 

13. (99쪽) 왜 '사국시대'가 아닌 '삼국시대'라 부르는가?

역사 교과서에서 주로 '삼국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국가의 발전 단계인 '중앙 집권 국가'로의 이행 여부 때문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왕권을 강화하고 법을 정비하며 불교를 받아들이는 등 강력한 통합 국가로 성장했다. 반면 가야는 여러 소국이 독자성을 유지하며 묶인 '연맹 왕국'의 형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신라에 흡수되었다.

 

 그러나 가야가 500년 넘게 존속하며 찬란한 문화를 남겼고 삼국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최근 학계에서는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승자의 역사뿐만 아니라 사라진 국가의 역사도 공정하게 바라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박은봉의 <한국사 편지 1-2> 원시사회부터 통일신라와 발해까지(102p~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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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봉의 <한국사 편지 2-1> 후삼국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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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봉의 <한국사 편지2>_후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112p~2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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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봉의 <한국사 편지 3>_조선 건국부터 조선 후기까지(~1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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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봉의 <한국사 편지 3>_조선 건국부터 조선 후기까지(122p~2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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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봉의 <한국사 편지 4>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 성립까지(~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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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봉의 <한국사 편지 5> 대한제국부터 남북 화해 시대까지(144p~2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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