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봉의 <한국사 편지1> 정보
- 서명: 한국사 편지 1 : 원시사회부터 통일 신라와 발해까지
- 저자: 박은봉
- 출판사: 책과함께어린이
- 초판 발행일: 2009년 2월 23일
- 쪽수: 약 216쪽
- 내용 소개: 한국사의 기원부터 통일 신라와 발해 시대까지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편지 형식으로 서술한 교양 역사서
- 그림 / 구성: 박은봉 글, 류동필 외 그림
박은봉의 <한국사 편지1-2> 원시사회부터 통일신라와 발해까지(102p~207p)
<한국사 편지 1-2> 질문별 핵심 답변
1. (104쪽) 낙랑공주는 왜 고민 끝에 자명고를 찢고 뿔피리를 망가뜨렸을까?
낙랑공주의 비극적인 선택 이면에는 '사랑'과 '국가'라는 두 가치의 충돌이 있다. 고구려의 호동 왕자는 낙랑국을 정복하기 위해 낙랑공주에게 적이 침입하면 스스로 울린다는 보물인 자명고와 뿔피리를 파괴해달라고 요청했다. 공주에게 자명고는 조국을 지키는 신성한 방어 수단이었으나, 이를 파괴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호동 왕자가 위험에 처하거나 그와의 사랑을 이룰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결국 공주는 개인적인 사랑을 선택하여 나라의 방어 체계를 무너뜨렸고, 이는 낙랑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이 이야기는 고대 국가 형성기에 벌어진 치열한 정복 전쟁의 이면과 그 속에서 희생된 개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 (109쪽) 왜 한강을 잃는 것은 주도권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였을까?
삼국 시대에 한강 유역은 단순히 넓은 땅 이상의 의미를 지닌 '전략적 요충지'였다. 첫째, 한강 주변은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었으므로 국가의 경제적 기반인 식량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둘째, 한강은 서해안과 연결되어 있어 당시 선진 문물을 보유했던 중국과 직접 교류하기에 가장 유리한 통로였다. 셋째,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여 남쪽의 신라·가야와 북쪽의 고구려를 견제하고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한강을 차지하는 나라가 삼국의 경쟁에서 앞서 나갔으며, 백제에서 고구려로, 다시 신라로 한강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삼국의 패권도 함께 이동했다.
3. (124쪽) 삼국 중 가장 우아하고 기품 있는 문화를 남긴 나라가 왜 백제일까?
백제 문화는 흔히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로 요약된다. 백제는 일찍부터 해상 무역을 통해 중국의 남조 문화와 교류하며 세련된 예술 감각을 익혔다. 백제의 장인들은 부드러운 곡선미와 온화한 미소를 특징으로 하는 예술품들을 만들어냈는데,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이나 정교함의 극치인 백제 금동대향로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백제의 미학은 주변국인 신라와 일본의 고대 문화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세련된 귀족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었기에 가장 우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4. (135쪽) 왜 우리 유적지에는 불교와 관련된 것들이 유독 많을까?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불교는 우리나라의 국교와 다름없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고대 국가들은 흩어져 있던 부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통치 이념으로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왕은 곧 부처라는 '왕즉불' 사상을 통해 백성들의 충성을 이끌어냈고, 국난 극복을 기원하며 수많은 절과 탑을 세웠다. 오랜 세월 동안 불교가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생활 양식에 깊이 뿌리박혔기에, 건축, 조각, 공예 등 우리 전통 예술의 정수가 불교 유적에 집중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5. (143쪽)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것이 왜 우쭐거림의 이유가 될 수 없을까?
과거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 우수한 문화를 전해준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타민족에 대한 우월감이나 우쭐거림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문화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중국이나 서역으로부터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만의 것으로 재창조했듯이, 일본도 전해 받은 문화를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누가 더 잘났는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류 문명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는 데 있기 때문이다.
6. (159쪽) 과거 평민들은 세금을 어떻게 냈을까?
고대 사회에서 평민(양민)들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크게 세 가지 형태의 세금을 부담했다. 첫째는 '조(租)'로, 수확한 곡식의 일정량을 국가에 내는 것이다. 둘째는 '용(庸)'으로, 성인 남성이 성을 쌓거나 도로를 닦는 등 국가의 강제 노동에 동원되는 '역'의 의무다. 셋째는 '조(調)'로, 각 지역의 특산물(옷감, 가죽, 수산물 등)을 바치는 것이다. 특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역'은 농사지을 시간을 뺏기는 고통스러운 의무였으며, 이러한 무거운 세금 부담은 평민들의 삶을 늘 힘들게 만들었다.
7. (178쪽 / 182쪽 / 186쪽) 신라의 골품제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신라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 제도에 있다. '골품'은 뼈의 등급을 뜻하며, 성골·진골과 같은 '골'과 6두품부터 1두품까지의 '품'으로 나뉜다. 이 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한 사람의 신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질 뿐만 아니라, 그 신분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의 높이, 집의 크기, 옷의 색깔, 심지어 사용하는 수레의 장식까지 모든 삶의 영역이 철저히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신라를 '골품제 사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제도가 국가 운영의 근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없었던 이 폐쇄적인 구조는 훗날 6두품 지식인들의 불만을 낳았고, 결국 신라가 쇠퇴하고 멸망하는 내부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는?
골품제와 관련있다. 선덕 여왕은 진평왕의 맏딸로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성골로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선덕 여왕뿐이였다.
8. (196쪽) 유득공은 왜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를 주장했을까?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그의 저서 <발해고>에서 우리 역사의 범위를 크게 넓혔다. 기존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를 '통일 신라 시대'라고만 불렀으나, 유득공은 북쪽에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엄연히 존재했음을 강조하며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공존한 '남북국 시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발해를 우리 민족사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린 만주 벌판의 역사를 우리 역사 속으로 다시 불러들인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9. (199쪽) 최치원은 왜 "지난날의 고구려가 오늘의 발해다"라고 했을까?
당나라에서 유학하며 국제적인 안목을 가졌던 신라의 천재 학자 최치원은 발해의 정체성을 명확히 꿰뚫어 보았다.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 후 그 유민들이 세운 나라였으며, 고구려의 문화와 기상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발해 스스로도 주변국에 보낸 문서에서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천명했다. 최치원의 이 말은 발해가 단순히 북쪽에 세워진 다른 나라가 아니라, 고구려라는 뿌리에서 나온 우리 민족의 역사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박은봉의 <한국사 편지1-1> 원시사회부터 통일신라와 발해까지(1~1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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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봉의 <한국사 편지 2-1> 후삼국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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